경기남일보

[서명운동] 용인 출신 오석 김혁 장군 서훈 상향 요구…10만 명 범국민 서명운동 추진

신규 발굴 1차 사료 바탕으로 독립운동 공적 재조명

대한제국 장교에서 독립군 지도자로…국가보훈부에 서훈 재평가 요청

이금로 대표기자 | 기사입력 2026/08/28 [14:14]

[서명운동] 용인 출신 오석 김혁 장군 서훈 상향 요구…10만 명 범국민 서명운동 추진

신규 발굴 1차 사료 바탕으로 독립운동 공적 재조명

대한제국 장교에서 독립군 지도자로…국가보훈부에 서훈 재평가 요청
이금로 대표기자 | 입력 : 2026/08/28 [14:14]

 

▲ 1922년 10월 23일 일본 외무성 아세아국이 간도 주재 총영사에게 보낸 기밀문서. 문서에는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 및 ‘군사통신원(軍事通信員)’ 관련 내용이 기록돼 있다. ©오석김혁장군선양회    

 

용인 출신 대표 독립운동가 오석(吾石) 김혁(金赫·1875~1939) 장군의 독립운동 공적을 새롭게 조명하고 현행 서훈을 상향해야 한다는 범국민적 요구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KCJ 국제관계연구소(소장 박인식)와 오석김혁장군선양회(대표 김성태)는 최근 새롭게 발굴·확인된 일제강점기 당시의 1차 사료와 그동안 축적된 학술 연구 성과를 토대로 김혁 장군의 생애와 독립운동 공적을 국가 차원에서 재평가해 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고 28일 밝혔다.

 

두 단체는 이를 위해 김혁 장군의 서훈 재평가를 촉구하는 ‘10만 명 범국민 서명운동을 공동 추진한다. 서명부와 신규 발굴 사료, 기존 공적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국가보훈부에 공식 제출할 예정이다.

 

대한제국 육군 장교에서 독립군 지도자로

 

김혁 장군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 제1기를 졸업한 정규 군사교육 출신의 육군 장교였다. 이후 고종황제를 보좌하는 시종무관을 역임하며 대한제국 군인으로서 활동했다.

 

그러나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면서 그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김 장군은 이후 본격적으로 항일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무장투쟁과 독립군 조직 건설, 군사 인재 양성 등에 헌신했다.

 

그는 흥업단 부단장을 비롯해 대한군정서 군사국장, 대한독립군 총재,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성동사관학교 교장을 맡아 독립군 간부와 군사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도 힘을 쏟았다.

 

이 같은 이력은 김혁 장군이 특정 독립운동 조직의 군사 지도자에 머문 인물이 아니라 만주 지역 독립운동 세력의 조직과 통합, 군사력 강화, 후진 양성 등 독립운동 전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지도자였음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평가된다.

 

일제 경찰 체포 뒤 징역 10가혹한 옥고

 

▲ 1928. 3. 22. 일제강점기 신민부 본부 습격과 김혁 등의 체포 경위를 보도한 당시 동아일보 신문기사, 기사에는 신민부 관련 인물들의 체포 과정과 당시 상황이 보도돼 있다. ©오석김혁장군선양회    

 

김혁 장군의 독립운동은 일제의 집중적인 탄압 대상이 됐다. 1928년 신민부 주요 간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체포된 김 장군은 이듬해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재판받았다. 당시 법원은 검찰의 구형보다 무거운 징역 10년 형을 선고했고, 김 장군은 장기간에 걸쳐 가혹한 옥고를 치렀다.

 

독립운동 조직을 이끌며 무장투쟁을 전개하는 동시에 독립군 인재를 양성하고 독립운동 기반을 확대했던 활동이 일제의 사법 탄압으로 이어진 것이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공적 재평가 필요

 

김혁 장군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다. 그러나 이후 학계와 지역사회에서는 그의 무장 독립운동과 독립군 지도자로서의 활동에 비춰볼 때 당시 서훈이 전체 공적을 충분히 반영했는지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번 서훈 재평가 요구가 주목받는 것은 단순한 기념사업이나 최근의 관심에 따른 것이 아니라, 김 장군의 공적을 재조명하기 위한 자료 발굴과 연구가 장기간 이어져 왔다는 점이다.

 

특히 2000년대 초부터 관련 연구와 자료 발굴이 지속됐으며, 기존 서훈 심사 당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일제 측 공식 문서 등 새로운 1차 사료가 추가로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롭게 확인된 자료에는 1914년 독립운동 군자금 조달 관련 기록 1919년 만주 지역 활동 자료 1922대한독립군 총재 김혁이라고 명시된 문서와 인영 1923년 동양학원 원장 재임 및 교육기관 운영 관련 기록 등이 포함됐다.

 

이 자료들은 김혁 장군의 독립운동이 단순한 무장투쟁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평가된다.

 

군자금 조달부터 독립운동 세력의 조직과 군사 활동, 군사 통신망 구축, 교육기관 운영과 인재 양성에 이르기까지 독립운동의 여러 영역에서 폭넓게 활동했다는 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고향 용인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확대

 

▲ 오석 김혁 장군 주요 연혁. ©오석김혁장군선양회    

서훈 재평가를 추진하는 KCJ 국제관계연구소와 오석김혁장군선양회는 김혁 장군의 고향인 용인에서 10만 명 범국민 서명운동의 첫발을 내디딘 뒤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는 물론 독립운동·보훈 관련 단체, 역사학계, 시민사회단체 등과 연대하고 전문가 검증과 학술토론회도 병행할 방침이다.

 

두 단체는 새롭게 발굴된 사료와 기존 연구 성과를 종합해 김혁 장군의 독립운동 공적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보훈부에 서훈 재평가를 공식 요청할 예정이다.

 

이번 움직임은 단순히 서훈의 훈격을 높여 달라는 요구에 그치지 않고, 새롭게 확인된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독립운동가의 공적을 다시 살펴보자는 데 의미가 있다.

 

특히 대한제국 육군 장교로 출발해 독립군 지도자로 활동하고, 독립군 간부 양성과 조직 건설에 힘쓰다 일제에 체포돼 장기간 옥고를 치른 김혁 장군의 삶을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가 이번 재평가의 핵심이다.

 

고향 용인에서 시작되는 10만 명 범국민 서명운동이 전국적인 관심으로 확산하고, 새롭게 발굴된 1차 사료에 대한 학술적 검증을 거쳐 김혁 장군의 독립운동 공적에 대한 국가보훈부의 재평가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오석 김혁 장군 대한민국장 서훈 재평가 10만 명 범국민 서명운동 -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ea0k93ZoMpMQ7RAEqAV-GZy5S2BA508LUCL30NOcl1GjPY6g/viewform?pli=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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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식 2026/08/30 [20:02] 수정 | 삭제
  • 역사 바로잡기는 후손으로서 당연한 의무입니다. 늦은감이 있지만 다행한 일이고 응원합니다.